2022년 엔지니어링 수주 실적 순위
2022년 엔지니어링 수주 실적 순위
by 그림아이 2023. 4. 13. 23:00
2022년 엔지니어링 수주 실적 순위
2022년 엔지니어링 업계 순위가 발표된 지 시간이 꽤 지났습니다. 굳이 지나간 자료를 가지고 복사, 붙여넣기만 할 생각은 없습니다. 토목 엔지니어로서 오랜 시간 동안 몸담았던 엔지니어링 업계에 대해 한 마디 하고자 합니다. 현재 엔지니어링 업계에 몸담고 있지도 않은데 제가 뭐라도 된 마냥 떠든다고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그저 토목기술사지만 좀 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그리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 엔지니어링 업계에 대한 얘기를 하고자 합니다. 역시나 시간이 좀 지난 기사지만, 2020년 한국건설신문에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성유경 박사님이 특별 기고한 ‘2030년, 건설 엔지니어링의 미래’라는 제하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건설업계가 불황이라는 말은 IMF 직후 사회에 나왔던 제가 20년째 듣고 있는 얘기입니다. IMF로 줄도산을 경험했던 건설업계가 정치적으로 경기 부양책의 도구로 사용되어 마치 죽어가는 사람에게 산소호흡기를 대듯이 간신히 살아남기만을 반복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물론 건설업계는 크게 건축과 토목, 그리고 시공과 설계로 철저하게 구분 짓는 것이 좋겠습니다. 나중에 좀 더 세부적인 구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신입을 벗어나지 못했을 때였던 2000년대 초반 신문 기사에서는 ‘OECD에서 GDP 대비 SOC 예산이 가장 많은 국가가 대한민국이다’라는 식의 보도를 다루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건설 분야 예산이 줄어들 거라고 했고 실제로 그러했습니다. 그러다가 4대강이라는 대국민 사기극이 벌어졌습니다. 토목 엔지니어 여러분, 우리 솔직히 가슴에 손 얹고 말해봅시다. 4대강 타당성 조사 결과와 기술 보고서 읽고 무슨 생각 하셨나요?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는 사기인 줄 알았지만 오랜 건설경기 침체로 잠시 침묵했던 것 아니었나요? 사기였지만, 거의 마지막 국가 주도 인프라 사업이라고 하면서 모든 건설업계가 사활을 걸었던 시기였습니다. 실제로 담합과 부패로 처벌 받은 대기업 업체들도 있었지만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 오히려 담합하길 잘했다는 얘기까지 있었습니다. 4대강 사업에서 최대 수혜자는 토목 시공업체였고, 두 번째 수혜자는 토목 엔지니어링 업계였습니다.
IMF 이전에 건설경기가 호황일 때는 토목과 건축, 시공과 설계 모두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도로망은 이미 90년대까지 거의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도로, 교량, 터널 등의 설계와 시공 물량은 절정에 달했고 이제는 물량 면에서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토목 시공은 다른 분야를 하면 되는데 도로부에 있는 엔지니어들은 점점 설계 물량이 줄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것입니다. 그나마 상하수도부와 수자원부는 국가 인프라의 유지보수 등의 사업으로 매년 정해진 물량들이 있으므로 괜찮은 편이지만 도로부는 부동산까지 침체기여서 걱정이 됩니다. 주택사업을 주로 하는 건축 분야는 지난 몇 년간 부동산 활황기여서 그나마 괜찮았을 것입니다. 물론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만 건축 시공과 설계는 그래도 버틸만 했을 텐데 이제 부동산 하락이 심화되고 있는 지금부터는 심히 걱정됩니다.
부동산 경기 침체 외에 현재 대한민국은 정치적으로도 불안정합니다. 어느 한 지자체장의 말 실수 하나로 작년 연말에 건설업계는 유동성 문제로 부도 직전까지 내몰린 업체들이 많았습니다. 고금리 시대에는 이와 같이 한 번 삐끗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어 조심스럽습니다. 게다가 중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대중국 무역수지가 역대 최대 적자를 기록하고 있어 원자재 가격 폭등의 우려도 있습니다. 그래도 토목은 사회 인프라라는 특수성으로 국가에서 안 할 수는 없으니 버틸 수는 있겠지만 건축은 부동산 경기 침체 기간이 길어질 경우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토목과 건축 모두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가 주목 받으면서 너도나도 뛰어들더니 요즘은 정권이 교체되면서 신재생에너지보다 원자력발전소를 선호하고 있어 다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토목 엔지니어링 업계는 수주 산업으로 치부되어 왔습니다. 고부가가치 산업이어야 할 엔지니어링 업계가 단순히 수주 산업으로 불리면서 기술 중심이 아닌 수주 물량 중심으로 덩치를 키워 왔습니다. 엔지니어링의 핵심은 기술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엔지니어링 업계에 기술이 중심이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스마트 건설 기술, BIM 등으로 첨단 기술을 적용해왔고 어느 정도 정착 단계인 현재에도 엔지니어링 업계는 기술보다 수주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이러한 시각은 엔지니어링 업계의 주도가 엔지니어가 아닌 경영자들이라는 것을 반증합니다. 일단 수주하고 나면 직원들이 밤을 새든, 죽어 나가든 어떻게든 통장에 돈은 들어온다는 구시대적인 사고를 아직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수주액으로 한 회사가 2022년에 몇 천억원을 달성했다고 하면 ‘돈 많이 벌었네’ 하고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그 회사의 엔지니어들은 1년 동안 개고생했네’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엔지니어링 업계의 지인들을 만나면 예전보다 연봉이나 처우도 개선되고 야근도 줄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설계 엔지니어링이라는 것이 사람을 쥐어 짜서 돈을 버는 산업이다 보니 야근과 합사가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종종 듣습니다. 고부가가치 산업은 제가 현재 몸담고 있는 화학계열의 회사와 같이 전 직원 300~400명 정도가 조 단위 매출을 기록하는 것인데, 설계 엔지니어링은 1년에 1인당 1~2억원 매출을 올리기도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니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거듭나기에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래서 엔지니어링 업계에서 인정 받는 임원은 기술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닌 수주 영업을 잘하는 사람들입니다. 차라리 엔지니어링 업계는 기술적으로는 고부가가치를 창출하지만, 이윤은 크게 못 남긴다고 정의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엔지니어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허락하는 것이 지나친 욕심인가 봅니다.
10여년 전 BIM의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 이런 문제들이 제발 좀 해결되기만을 간절히 바랐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애초부터 불가능한 희망이었던 것 같습니다. BIM은 그저 하나의 도구일 뿐, 업계의 불합리한 점을 개선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세상은 인공지능으로 시끄럽습니다. 10여년 전과 같이 또 한 번 희망을 가져 보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BIM을 처음 듣고 친구들에게 술자리에서 얘기했던 2007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BIM을 제대로 잘 모르는 친구들을 보면 인공지능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단순히 오토캐드에 ChatGPT처럼 채팅창 띄워놓고 일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모양인데, 도면을 딥러닝으로 학습시켜 설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할 거라는 생각은 못하고 있나 봅니다. 앞으로는 제가 2000년대 초반에 상상했던 것처럼 기술사 한 사람이 SimCity 게임처럼 설계하는 날이 머지 않아 올 것입니다. 아직 인공지능에게 도면을 학습시킨 적이 없었을 뿐입니다.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을 상대로 이겼을 때 이미 인류의 운명은 결정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이 특정 분야에 대해 학습을 아직 안 해서 시도하지 않았을 뿐이지 인간처럼 설계하는 것은 어떤 분야든지 간에 시간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씁쓸하지만, 2021년과 2022년의 엔지니어링 업계의 수주액 순위를 살펴보시면서 지금까지 제가 한 얘기들 진지하게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단위 : 억원)